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과학 기술 (문단 편집) ==== [[수차]] ==== 수차는 상기한 대로 고대부터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세 시대로 들어서면서 일반에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 전파와 장원제와 봉건제의 등장으로 인해 노예의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은 기존의 노동력을 기계로 대체하려고 하기 시작했다.[* 다만 노예제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19세기 들어서이며 대항해시대 이전부터 중세 유럽에선 여전히 노예제가 잔존했는데, 주로 겔리선의 노잡이들이 노예들로 구성되었으며, 속설과 달리 같은 종파의 그리스도인이라도 노예로 삼은 기록이 남아 있다. 자세한 것은 [[노예제]] 항목을 참고.] 이에 대한 대안이 바로 수차와 풍차였다. 수차와 풍차는 6세기경 아일랜드에서 위에서 물을 붓는 방식으로 가동되는 상괘식이 등장한 것 외엔 초기에 단순히 곡식의 도성과 물을 빼내거나 붓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으나 9세기부터 프랑스에서 축용을 위한 용도의 수차가 개발됨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 선박형 수차(Ship Mill)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c/MI_-_Schiffmuehle.jpg|이미지1]][[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6/Shipmills%2C_Martyrdom_of_St_Ursula_at_Cologne_%28detail%29.jpg|이미지2]] 제1차 로마시 공성전에서 동로마군의 포위로 인해 고트족들이 로마시 주변의 수차들을 파괴하면 밀가루를 현지에서 조달하려는 동로마군 입장에서 난황을 겪게 되자 당시 동로마군의 지휘관이었던 벨리사리우스가 고안한 수차였다고 한다. 공성전이 끝난 후 선박형 수차는 서유럽으로 전파되었고, 동로마 제국의 주적이었던 이슬람 제국 또한 선박형 물레방아를 사용했다. 이미지를 보면 알지만 수차를 강가 위에 띄우는 형식도 있으나 그냥 두 척 이상의 나룻배에 물레방아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 조석 수차(Tidal Mill)(6세기)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f/Olhao_Tide_Mill.jpg|이미지]][[https://www.tidemillinstitute.org/definition-of-a-tide-mill/|영문주의]] 통상의 수차와 달리 조수 간만의 차를 이용한 수차로 해안가에 지어졌다고 생각되지만 석호에 뚝을 만들거나 내륙에 저수기를 축조한 후 저수지 옆에 만들어졌으며, 고대 로마 때부터 만들어진 수차지만 이 역시 보편화된 때가 중세였다. * 상괘식 수차(Overshot Watermill)(6세기) 아일랜드에서 만들어진 수차로 유속이 느린 하천에서 제 성능을 내기 어려운 기존의 하괘식 방식의 수차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위에서 물을 붓는 방식으로 가동되었다. * 맥아 수차(Malt Mill)(6세기) [[맥아]]를 삗기 위한 수차로 770년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이하 수차들은 곡식을 도정하기 위한 수차들이었으나 정작 농민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했다. 이는 당시 영주들이 물레방아의 경영자들과 계약을 맺으면서 이들을 세리로 삼아 사실상 장원 내의 농노들에게 강제적으로 물레방아를 이용하게 만들어 도정한 곡식의 일정부분을 물레방아 업자에게 주게끔 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농노들도 물레방아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몰래 [[맷돌]]을 사용해 곡식을 도정했고, 영주는 영주들 대로 맷돌을 압수하려고 했다. * 축융 수차(Fulling Mill)(1080년대)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f/fa/V%C3%A1nyol%C3%B3.jpg|이미지1]][[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2/Fulling_mill_bockler.jpg|이미지2]] 모직물의 축융[* 비누 용액과 알칼리 용액을 섞은 것에 서로 겹쳐진 양모를 적셔 압력을 가하는 작업. 양모는 섬유의 수축이 심하기 때문에 축융 작업으로 미리 최대한 수축시켜놓아서 섬유를 치밀하고 단단하게 만들어놓아야한다.] 작업을 위한 수차,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 무두질용 물레방아(Tanning Mill)(1134년) [[https://www.youtube.com/watch?v=JePHz7yVijk&t=176s|관련 영상 2:55부터 보는 것을 추천]] 가죽의 무두질 작업을 하기 위한 수차로 역시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 대장간용 수차(Forge Mill)(1200년대)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5/PSM_V38_D183_A_forge_trip_hammer.jpg|이미지1]][[https://www.engr.psu.edu/mtah/essays/saugus/saugus7.jpg|이미지2]][[https://www.youtube.com/watch?v=eYG7ow31-4Y|관련 영상 0:26부터 볼 것을 추전]] 말 그대로 대장간의 제철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수차로 철의 단조를 위한 망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 연삭용 수차(Tol-Sharppening Mill)(1203) [[https://www.arms-n-armor.com/blogs/news/what-kind-of-finish-did-a-medieval-sword-blade-have-pt3|영문 주의]][[https://www.youtube.com/watch?v=OQKPtIokK18|31분 50초부터 볼 것을 추천한다.]] 대장간용 수차의 일종으로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수력으로 가동되는 그라인더가 설치되어 있었다.물론 수력으로 가동된 방식 발고도 크랭크를 돌리는 형식으로 가동하는 [[https://www.pinterest.co.kr/pin/464715255279194270/visual-search/|방식]]이나 패달로 가동하는 [[https://1.bp.blogspot.com/-fCgVIRFddY0/U1tsj4MnxlI/AAAAAAAAdPE/SAgVWSVf2lo/s1600/fevre+coutelier.JPG|방식]]이 있었다. * 대마용 수차(Hamp Mill)(1209년) 삼의 박피 과정에 사용된 수차로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 풀무용 수차(Bellows Mill)(13세기 중·후반) [[https://www.engr.psu.edu/mtah/essays/saugus/saugus3.jpg|이미지1]][[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augus_Iron_Mill_-_forge_with_bellows.JPG|이미지2]] 풀무용 물레방아는 물레방아에 초대형 풀무를 연결해 수력으로 풀무를 가동시켜 괴철로에 공기를 주입시켰다. 1269년, 1283년 각각 슬로바키아와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 제지용 수차(Paper Mill)(12세기) [[https://www.youtube.com/watch?v=ZcMwkMcZ2v0|관련 영상]] 수력으로 종이를 제작하기 위한 수차로 12세기 전후 스페인을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무어계 이슬람 시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당시 종이는 원산지인 중국과 달리 면섬유지로 야마포, 넝마와 같은 헝겊으로 만들어졌기에 인력이 아닌 수차와 연결된 압축기를 이용해 제작되었다. 이후 1189년 프랑스로 전파된 것을 시작으로 1276년 이탈리아, 1336년 독일의 마인츠, 1498년 영국에 수력에 가동되는 제지공장이 들어서는 등 다른 그리스도교 국가들도 제지용 수차를 만들어 종이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제지용 수차 덕에 유럽은 타문명권과 달리 그나마 상대적으로 종이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다.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 생산 이전까지 종이는 여전히 비싼 편이었다.] * 제재소용 수차(Sawmill)(14세기) [[https://www.youtube.com/watch?v=O2fESvZ9vOg|관련 영상]] 수력으로 목재를 단순 가공하는 목적의 수차로 이미 고대 로마시대부터 수력으로 가동되는 재제소가 있었지만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잊혀진 기술이 되다가 다시 이슬람 세력과의 교류 등으로 다시 유럽에 소개되었다. * 광물 파쇄용 수차(Ore-Crushing Mill))(1317년)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9/Agricola_Stamp_ore_crusher.png|이미지]] 수력으로 가동되는 물망치로 이용해 철광석 등의 금속 원석들을 파쇄하기 위한 수차로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 용광로용 수차(Blast Furnance Mill)(1384년)) 기존의 괴찰로를 대체한 대형 용광로에 위에 언급한 수차와 연결된 대형 풀무를 설치해 보다 더 많은 철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프랑스에서 만들어졌으며, 백년 전쟁이 종결된 이후인 15세기 중반부터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밖에도 수차는 다리를 세울 때도 사용되었다. 교각을 착공하기 전 우선적으로 교각의 틀을 만들기 위해 하천의 높이 보다 더 긴 여러 개의 나무 말뚝을 교각의 형태에 맞게 박은 다음 그 옆으로 수차를 가설해 틀 안에 고여있던 물을 빼는 역할을 했다. * [[풍차]](11세기) 7세기경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져 이후 10세기경 이슬람 세력에 의해 이베리아 반도로 통해 유럽 각지로 전파되었다.자세한 내용은 풍차 항목을 참고할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